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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정재만
 
 
 
 
1948년1월1일
2014년7월12일
부산
추모관
남자
이웃
경기도
한국춤의 백미 ‘승무’의 대가 정재만(사진) 선생이 12일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66세.

경기도 화성 출신인 고인은 한국 전통춤의 대부 한성준(1874~1941)의 손녀인 한영숙(1920~89)의 뒤를 이어 승무를 계승했으며,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고인은 타고난 춤꾼이었다. 그의 춤 인생은 열네 살 때 송범(1926~2007)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이 운영하는 무용연구소에 우연히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스승 송범에게 “3개월 만에 3년 배운 것처럼 춘다. 이미 기본기와 민첩성·근력·균형감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그의 춤 실력은 천재적이었다. 이후 한영숙에게 발탁, 본격적으로 승무를 배웠다. 그의 호 ‘벽사(碧史)’는 스승 한영숙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선생의 춤은 우아하고 화려하면서 동시에 역동적이고 심오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1970년대 국립무용단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고, 80년대에 이르러선 직접 창작에 나섰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폐막식 안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무용 총감독, 2006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의 집 예술총감독 등을 맡았으며, 87년부터 지난해 8월 정년퇴임 때까지 숙명여대 무용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또 정재만무용단 대표, 벽사춤보존회 회장, 벽사춤아카데미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1980), 프랑스디종국제민속예술제 금상(1991),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0), 옥관문화훈장(2007), 대한민국예술원상(2010) 등을 받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에 한국 무용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중앙선을 넘어온 차와 충돌한 비극적인 사고여서 더욱 황망해 했다. 한국춤 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선생은 전통춤과 신무용을 아우른 최고의 춤꾼이었다”면서 “우리나라 남성춤 계보의 한 축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도 “하늘에 닿는 춤을 추려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살았던, 한국춤의 큰별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박순자씨와 ‘승무’ 이수자인 아들 용진, 딸 형진씨 등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9시다. 02-3410-3151.

이지영 기자